관훈갤러리 기획전
Surface x Time
기간 : 2023년 1월 31일 ~ 2월 21일
장소 : 관훈갤러리 본관 전층
기획: 정은영 (미술사/미술비평, 한국교원대학교 교수)
표면은 사물의 가장자리를 차지하는 경계면이자 물질이 외부 세계와 만나는 접면이다. 사물의 가장 바깥에서 이질적인 세계와 접촉하는 표면은, 생명체의 표피처럼, 존재하기 위해 단절되어야 하는 불연속적인 한계 지점이지만, 동시에 외부 세계와 맨 처음 만나 끊임없이 뒤섞이며 변화하는 연속적인 혼융의 단면이다. 모든 존재자들은 표면을 드러내고 표면으로 나타나며 표면을 통해 접촉한다. 표면은 끝나는 종점이자 시작하는 문턱이어서 존재의 외피가 만들어내는 외곽의 경계선을 그리면서도 언제든 그 경계를 무너뜨릴 수 있는 내적 운동을 쉬지 않는다.
한때 회화의 표면은 일체의 불순물을 제거한 순수한 평면이고자 했다. 그러나 이제 그것은 파동의 방향과 속도가 급격하게 바뀌는 이질적인 매질의 경계면으로 작용하거나, 내부의 에너지와 물질 운동에 의해 어긋나며 이어지고 침강하며 융기하는 지질학적 지대처럼 펼쳐진다. 그것은 시간이 축적된 표면, 순간들이 쌓인 평면이다. 시간을 품은 회화의 표면은 평면이지만 평평(flat)하지 않으며 정지해 있지만 운동을 멈추지 않는다. 어쩌면 오늘날 무엇인가를 그리고 지우고 만들고 해체하는 모든 예술 행위는 Surface x Time, 말하자면 ‘물질의 표면에 시간을 곱하기’라는 공식을 새로운 방식으로 수행하는 창조적 실험이 아닐까.
한 줄의 프롬프트 명령어가 불과 몇 초 내에 무수한 이미지들을 생성해내는 시대에 이미지 생성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우리의 기억은 짧아지고, 이미지의 화소와 해상도가 높아질수록 우리의 감각은 무뎌진다. 오랜 시간 수많은 순간을 쌓아 만든 표면, 감각의 모든 변이들이 그 자체로 지각 가능한 평면이 더없이 소중해지는 이유다. 물질의 표면에 시간을 곱하는 작업은 작가에게는 피할 수 없는 고행이지만 관객에게는 덤으로 얻는 은총이다.
[참여 작가] (성명 가나다순)
강우영, 권민정, 신보라, 위영일, 이강욱, 이열, 이한수, 임성연, 장인희, 정나영, 정호상, 조혜경, 홍정욱 총 13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