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천미술관 故주재현 특별순회전 《재히어니, 나는 죽었다》
전시기간 : 2024. 6. 19. ~ 7. 1.
전시장소 : 관훈갤러리 1층 2층
관람시간 : 10:30 – 18:30 (휴관일 없음)
주최/주관 : 홍천미술관
후 원 : 오드래빗미디어
본 전시는 홍천 출신의 천재 요절 화가 주재현의 30주기를 추념하는 특별순회전으로, 대표작 20여 점을 비롯하여
주재현과 그의 생애 전반과 예술 활동을 되짚어 볼 수 있는 다큐멘터리 및 미디어아트까지 공개된다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홍천미술관은 지난 2022년 30여 년간 주재현의 작품을 보관해 온 유족 및 지인으로부터 2,491점에 달하는 원화를
기증받았다. 이후 홍천미술관은 방대한 작품의 규모만큼 다양한 소재와 주제 그리고 다채로운 기법과 양식으로
다루어진 주재현의 작품을 2년에 걸쳐 분류하고 데이터화하는 1차 아카이빙 작업을 진행하였다. 그 결과 유사한
소재 혹은 주제를 다루고 있는 시리즈를 총 217개로 정리할 수 있었다. 또한 작가 스스로 ‘화업 원년’으로 삼은
1981년부터 작고한 1994년까지 총 13년이라는 기간 동안 어느 해도 작업을 손에서 놓지 않고 지속한 주재현 작가의
그림에 대한 열의와 애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故주재현의 30주기를 추념하는 특별순회전은 뮤지엄호두(천안) 및 아트센터 화이트블럭(파주)를 거쳐 관훈갤러리(서울),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광주), 유니랩스 갤러리(부산)까지 총 70여 일간 진행된다. 본 특별순회전을 통해 우리의 기억
속으로 다시 찾아온 천재 요절 작가 주재현을 한국미술계 속에서 되살아나게 함으로써 지역과 시대를 넘어 예술이 영원할
수 있음을 확인하고자 한다. 더 나아가 비단 주재현 작가뿐 아니라 작고 작가 및 지역 작가들을 발굴하고 재조명해야 할
당위성을 확인하고, 이를 통해 한국미술의 확장과 발전을 꾀하고자 한다.
1961년
9월 24일 강원도 홍천군 성산리에서 4남매 중 맏이로 출생
1962-1967년
유복한 유년시절 아버지의 교육열과 문화적 배려가 각별해 가족여행, 영화관람 외식 등 당시로서는 흔치 않았던 문화를 일상적으로 누림. 특히 스케이트를 일찍 배워 각종 대회에서 수상.
1968-1973년
화촌초등학교 입학. 6년 내내 1등과 반장을 도맡음. 중간에 남춘천초등학교로 전학해 혼자 하숙 생활.
1974년
춘천중학교 입학. 전국대회 우승 경력의 춘천중학교 야구부에 입단하고자 했으나 아버지의 반대로 무산.
1977-1979년
춘천고등학교 입학. 이 시기 미술에 적극적인 관심을 두기 시작.
공군사관학교에 응시하였으나 신체검사 전 영구치를 뺀 탓에 아쉽게 낙방. 야구선수 이후 두 번째로 희망했던 진로 좌절.
1980년
강릉대학교 미술과에 후기 입학 전기 미술대학 면접에서 색맹검사를 통과하지 못해 낙방 색맹이 아니었으므로 본인 또한 이해가 되지 않는 기이한 일이라 주장.
1981-1982년
강원대학교 미술교육과 입학 스스로 화업 원년으로 규정. 8절지 그림에 몰입 철거 직전의 허름한 가건물을 점거, 작업실로 사용 자신을 천재라 주장하며 기행을 일삼음. 사회와의 충돌을 스스로 선택.
1983-1985년
의무경찰에 자원입대, 부대 안에서도 계속해서 그림을 그림 군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으며, 부당한 처사에 항의하고 상명하복에 반대 유서를 남기고 자살 기도. 연대장이 아버지를 부대로 호출 그림을 내보이며 사상과 정신이 불량하다고 주장 정신적 안정과 치료가 필요하다는 의사 소견에 따라 한 달간 집으로 방면 한 달 후 부대로 복귀하여 군 생활을 마치고 무사히 제대.
1986년
강원대학교 박물관 2층 전시실에서 개인전 개최. 제단과 촛불을 놓고 실험적인 음악과 설치 형식의 그림을 종합적으로 내보인 독특한 전시. 독단적 자기주장은 여전했으며, 계속해서 8절지 그림 고집. 사회와의 소통 불능에 힘들었던 시기로 그림에도 우울한 경향이 드러남.
1987년
모교인 춘천고등학교로 교생 실습. 이즈음 여러 예술가와 친분을 쌓으며 예술을 논함.
1990년
강원도청 앞에서 《주재현의 그림소풍전》 개최.
초여름 인사동 길거리에서 8절지 《그림소풍전》 개최, 언론의 주목을 받음. 중광스님이 그림 한 점을 300만 원에 구입. 그 돈으로 미술 재료를 구입하며 물감 마련의 어려움에서 해방.
가을부터 이듬해 봄, 사근진에서 예술가 여럿과 합숙하며 예술인 동네 형성. 주로 전지 크기의 커다란 그림을 그리며 다양한 시도 계속.
이 시기 평생의 연인 이승민과 만남.
1991년
3월 강릉 경포대에서 《그림소풍전》 개최.
사근진의 전지 그림과 기존의 8절지 그림을 섞어서 서울 청남미술관에서 개인전 개최. 미술관 1, 2층만 대관하기로 계약했으나 반응이 좋아 전관 전시로 확장.
7월 수안스님과 함께 대구 대백갤러리에서 《주재현 그림일기 초대전》 개최.
1993년
대학 친구 백중기가 사는 영월로 거처를 옮김. 활발하게 그림을 그리며, 친구, 연인과 행복한 시기를 보냄.
1994년
3월 29일 항상 타던 고물 오토바이로 홍천 고향집에 가던 길에 사고로 영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