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열정의 기록들 (New York East-Village Artists’)
-기 간 : 2021. 12. 1 ~
2022. 2. 20
-참여작가 : Basquiat
Jean-Michel(장-미셸 바스키아), Hannah
Duncan(던컨 한나),
James Romberger(제임스 롬버거), Crash(크래시), Daze(데이즈) 외 16명
-시 간 : 화 ~ 일 10:30 – 18:30,
(월요일 휴무)
-담 당 : 김석원 (02-733-6469)
관훈갤러리에서는 1980년대 뉴욕 이스트빌리지 아트를 조명한 기획전시를 선보인다.
2018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시작했던 전시로, 중국 청두 Maypark Museum&Gelllery와 상하이 One East
Artcenter에서의 순회 전시를 거쳐 마지막으로 갤러리 공간을 통해 재조명하게 되었다.
1980년대 뉴욕은 극심한 빈부격차와 재개발을 위한 방화 등으로 이스트빌리지는 급격하게 슬럼화 되어가고 있었다. 계급, 성별, 인종차별, 마약, 폭력, 에이즈 등 억압이 팽배했던 시대로, 이스트빌리지에서 예술은 어두운 현실을 반영하는 수단이자 작가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도구였다. 다시말해 이들에게 예술은 곧 삶이었고 일상이었다. 이곳에 모여든 예술가들은 남겨진 거리와 빈 공간에서 자신들을 둘러싼 사회, 정치적 문제에 개입하면서 현실에 대한 저항과 비판을 실천했다. 이러한 시대배경 속에서 작가들은 삶과 예술을 연관시키는 작업들을 해오며 자신들만의 정체성을 찾아갔다. 이들은 삶과 예술, 삶과 정치, 예술과 정치라는 유기적인 관계를 작품에 담아내고자 했다. 예술에서 이들이 말하고자 하는 정치적인 이념은 실존의 문제였다. 가난과 학대에 시달리고, 사회로부터 소외된 당시 작가들은 자신들의 모습을 적나라게 작품에 표현했다. 그렇기에 이들의 작품은 생생하고 화려하며 거칠고 강렬하다. 이들의 작품을 바라보면 인간의 감정의 분출, 내면 속에서 격렬한 외침을 느낄 수 있다. 역설적으로
이들의 작품은 어두운 현실 속에서 실존의 가치를 외친 열정의 기록들이다.
이번 기획전에 참여하는 21명의 작가들은 그들의 청년시절이던 1980년대 뉴욕 주로 이스트빌리지에서
모여서 활동하던 작가들로 각자 다른 방식대로 드로잉, 페인팅, 그래피티, 판화 등 다양한 장르의 기법을 통한 회화 사진 프린트 에디션, 설치
등을 해왔다. 이들의 작품 78점이 전시장
1, 2, 3 층 전관을 통해 선보인다.
1층에는 저항의 목소리를 거칠지만 강력하게 그려낸 스티븐 랙, 리 퀴노네스 등의 작품을 그리고 2층에는 당시 이스트빌리지의 현실의 가장 사실적인 표현으로 고발한 릭 프롤, 존 에이헌, 제임스 롬버거, 데이즈 등의 작품을 전시하였다. 3층은 이미 우리에게 고전이 된 장-미셸 바스키아의 초기 작품 6점과 바스키아, 키스해링의 사진 그리고 제인 딕슨 등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Ahearn, John(American, b.1951)
존 에이헌은 뉴욕에서 태어나 코넬 대학교에서 공부했다. 에이헌은 이스트빌리지의 예술가 그룹 콜랍의 주요 멤버 중 한 명으로, 이스트빌리지의 주요 전시 중 하나인 <타임 스퀘어 쇼>를 공동기획하고 참여했다. 당시 에이헌은 콜랍의 또 다른 멤버였던 조각가 톰 오터니스와 함께 타임스퀘어 근처의 빈 건물을 발견하고 건물주와 협상하여 6월 한 달간 공간을 사용할 수 있는 허가를 받아냈다. 1980년 6월에 개최된 <타임스퀘어 쇼>는 뉴욕시의 과도한 재개발에 반대하고 저소득층의 빈민들, 다인종의 공존을 촉구하며 백여 명의 예술가가 참여했다.
1979년에 에이헌은 사우스브롱크스에서 만난 조각가 리고베르토 토레스와 협업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사우스브롱크스는 2차 세계대전 이후 1960년대까지 노동자 계층의 흑인, 히스패닉 등 소수 인종이 주로 거주하는 곳이었다. 1970년대에도 뉴욕의 빈곤, 범죄, 마약의 온상이었지만, 저렴한 집값과 월세로 인해 가난한 예술가들이 작업하고 거주하는 공간이 되었다.
에이헌과 토레스는 석고로 사람의 얼굴을 본떠서 만드는 라이프 캐스트 방식으로 사우스브롱크스에 사는 가난한 흑인들의 조각상을 만들었다. 또한 1981-85년에는 사우스브롱크스의 빈민자들이 모여 살던 공동 주택가에 주변 이웃들의 삶을 묘사한 벽화를 그리는 작업을 진행했다. 1986년에 제작한 <쥐 잡는 아이들>은 거리에서 쓰레기통 주변에 서식하는 생쥐들을 잡으면서 노는 아이들을 보고 영감을 받아 그들을 라이프 캐스팅한 작품이다. 그 중 한 명은 당당히 앞을 향해 걷고 있는데, 이 포즈는 에이헌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인상 깊게 본 고대 이집트의 목조조각을 떠올리며 제작한 것이다. 에이헌은 관객들이 작품의 아이들을 통해 낙후된 사우스브롱크스에서도 꿋꿋이 살아가는 “아이러니한 영웅” 모습을 발견하길 기대한다고 말한다.
Basquiat, Jean-Michel (American, b.1960 – d.1988)
장-미셸 바스키아는 뉴욕 브루클린의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그림 그리기에 재능을 보였고, 그의 어머니는 그를 브루클린 미술관의 어린이 회원으로 등록하고 미술전문 사립학교 세인트앤 초등학교에 입학시키면서 재능을 지원해주었다. 그러나 그가 일곱 살이 되었을 때, 어머니의 우울증으로 인해 부모는 이혼하게 되고 바스키아는 점차 불행한 삶을 살게 된다. 열다섯 살부터는 가출을 반복하며 거리에서 생활하게 된다. 그는 작업실도 잘 곳도 없었지만. 친구들과 어울려 뉴욕 거리와 지하철에 낙서화를 그렸다. 1970년대에는 소호가 뉴욕 예술의 중심이었지만, 바스키아를 비롯한 1980년대 화가들은 이스트빌리지를 중심으로 신표현주의라는 새로운 경향을 주도하게 되었다.
한 곳에 정착하여 생활하지 않은 바스키아는 공원 벤치에서 숙식하며 구걸, 마약 거래, 손으로 그린 엽서와 티셔츠 판매로 생계를 유지했다. 그 중 한 작품이 엽서 시리즈인 <무제(안티프로덕트 엽서)>다. 바스키아는 엽서를 제작하여 뉴욕 거리와 상점에서 1-3달러에 팔았고, 친구들에게 나누어주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카드를 ‘안티프로덕트 엽서’라고 불렀는데, 이는 자신의 작품을 반(反)-상품으로 정의하는 동시에 뉴욕 미술계에서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위한 새로운 창구를 제시하는 행위였다.
CLEVELAND, BUSTER(American, b.1943 – d.1998)
버스터 클리브랜드는 시카고에서 태어나 시카고 예술학교와 샌프란시스코 예술학교에 다녔다. 캘리포니아에서 거주하던 시기에는 유럽 다다이즘의 영향을 받은 '멘도시노 에리어 다다이스트'와 '베이 에리어 다다이스트'의 구성원으로 활동했다. 1970년대 후반에 이스트빌리지로 이주하여 소호 거리에서 우표 크기의 콜라주 작품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당시 클리브랜드의 작품 대부분은 앤디 워홀의 영향을 받아 장난감, 자동차 후드 장식품 등의 일상적 재료를 이용한 콜라주를 우편으로 보내는 '메일아트' 형식을 띠었다. 클리브랜드의 스승이자 친구였던 레이 존슨에 의해 1940년대에 처음 시도된 메일아트는 기성의 제도권 전시 공간인 갤러리나 박물관에서 벗어나 대안적인 네트워크 속에서 작품을 유통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이는 가난한 예술가가 저렴하고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었을 뿐만 아니라 국가나 기관으로부터의 검열을 피해 자유로운 표현을 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클리브랜드가 가장 애용한 재료는 미술잡지 '아트포럼'이었다. 과거의 대중문화와 동시대의 이미지를 병치시킴으로써 서로 다른 시공간에 존재하던 이미지를 콜라주 하는 작업 방식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인용과 차용의 방법론에 영향을 받았다. 누구든지 월 구독료 100달러 혹은 평생 구독료 1000달러를 지불하던 우편을 통해 클리브랜드의 작품
Dickson, Jane(American, b.1952)
제인 딕슨(1952-)은 1976년에 하버드 대학교를 졸업하고 뉴욕으로 이주했다. 당시 딕슨은 데이비드 워나로비치, 키스 해링, 제니 홀저, 영화제작자이자 남편인 찰리 에이헌과 함께 다운타운 예술, 펑크 록, 힙합 등 다양한 하위문화의 영향 속에서 작업을 진행했다.
딕슨은 높은 범죄율과 지저분한 환경으로 악명 높은 뉴욕의 43번가와 8번가의 아파트에 거주하면서 작가 생활을 이어갔다. 딕슨의 회화는 그녀가 삶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던 타임스퀘어의 야경을 소재로 한다. 뉴욕으로 이주한 후, 컴퓨터화된 타임스퀘어의 전광판을 작업하는 컴퓨터 그래픽 애니메이터로 일하게 된 딕슨은 검은 전광판에 형형색색의 조명이 빛나는 모습에 모티프를 얻어 짙은 검은색 배경과 그와 대조를 이루는 다양한 색으로 작업을 진행했다. "자연의 풍경과 꽃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할 것이 없다."라고 말하는 딕슨은 교외의 집들, 고속도로, 축제, 데몰리션 더비(자동차 파괴 경기) 등 현대적 삶을 구성하는 다양한 소재와 주제를 다루었다. 검은색 배경에 화려하지만 희미한 색깔로 채워진 그림들은 감상자로 하여금 묘한 거리감을 느끼게 만든다. 이런 거리감은 종종 현대적 삶에 대한 냉소나 무관심으로 고독감과 소외감을 보여주며 이를 해석되기도 하지만, 이는 오히려 일상에 대한 반성과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인식되지 못한 감정을 이끌어내기 위해 전략적으로 설정된 것이다.
Michael Bevilacqua
Bevilacqua 는 페인팅, 드로잉, 그래픽 디자인, 애니메이션 및 등 다양한 기법과 장르를 융합하여 다층적인 화면을 만든다. 이러한 이미지는 자신의 취향과 당시에 겪었던 경험에서 비롯되며 ‘우연한 연관성’에 초점을 맞춘다. 우연한 연관성에 의해 선택된 이미지들은 에어브러쉬와 드로잉, 콜라주, 실크스크린 등의 방식을 통해 캔버스에 나열되고 조작된다. 이러한 과정은 그가 직관적으로 경험한 세계이며 자신과 가족, 예술 그리고 이들 세계의 균형을 이루는 내부적 언어이다.
Greenblat, Rodney Alan(American, b.1960)
로드니 앨런 그린블랫(1960-)은 캘리포니아 달리시티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미술에 재능을 보여 세 살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열한 살에 학부모 핸드북 표지를 그리는 것으로 처음으로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작품을 발표했다. 몇 년 후 뉴욕으로 이사했고, 그의 재치있는 다채로운 조각과 그림은 1980년대 이스트빌리지의 예술을 상징하는 작품 중 하나가 되었다.
그는 이스트빌리지 작가 중 미술계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작가 중 한 명으로 일러스트레이터, 기자, 비평가, 상업 디자이너 등 다방면으로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이스트빌리지에서 그의 전시를 본 일본인 사업가로부터 게임 일러스트레이터를 제안받으면서 그는 상업 디자이너로 활동하게 된다. 1990년대부터는 컴퓨터 소프트웨어와 비디오 게임을 개발하는 데 주력하여, 다양한 게임 개발에 참여했다.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끈 게임 '파라파 더 래퍼'의 기획에 참여했으며, '썬더 버니' 등의 캐릭터를 만들어 인기를 끌었다. 그는 세계적인 캐릭터 디자이너로서 소니, 도요타, 뉴욕타임스, 뉴요커, 일본 큐슈 철도 등의 광고와 삽화를 제작했다. 한편 그는 동양철학에도 관심을 가져, 2007년부터는 선 사상을 공부하고 있다. 그는 현재 뉴욕 북부의 캣츠킬에 살면서 작품 활동과 전시를 이어가고 있다.
Greenfield-Sanders, Timothy(American, b.1952)
티모시 그린필드-샌더스(1952-)는 플로리다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베트남 전쟁 반대운동에 참여하는 등 급진적이고 진보적인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성장한 그는 1978년에 이스트빌리지에 정착했다. 그는 이스트빌리지에 거주하면서 뉴욕 문화계의 수많은 유명 인사와 주요 장소를 촬영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다섯 명의 미국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콜린 파월 등 정치계 인사, 알프레드 히치콕, 앤디 워홀, 조안 미첼 등 문화계 인사, 코난 오브라이언, 앨런 디제너러스 등 유명인을 촬영하면서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그의 작업은 사진에만 한정되지 않았다. 1970년대의 전설적인 록밴드 루 리드에 관한 다큐멘터리 <루 리드: 로큰롤 심장> 프로듀서와 감독으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포르노 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을 촬영한 사진책 'XXX: 30명의 포르노 스타들의 초상'을 출간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절친한 친구이자 이스트빌리지의 대표 비평가인 로버트 핀쿠스 위튼과 함께 평소와 같이 이스트빌리지를 배회하다 이스트빌리지의 풍경과 거주 작가들을 사진으로 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바로 그날 이스트빌리지에서 활동하는 작가, 딜러, 비평가, 컬렉터를 일곱 개의 그룹으로 나누고 촬영을 시작했다. 여기에는 주디 글랜츠먼, 마이크 비들로, 아치 코넬리를 비롯하여, 초기 이스트빌리지 작가였던 데이비드 워나로비치, 푸트라 2000, 마크 코스타비, 키키 스미스, 콜린 드 랜드, 팻 헤이언 등이 포함되었다. 니나 린의 <I rascibles Artists(성난 사람들)>의 구성을 그대로 차용하여 촬영된 이 사진은 <New Irascibles Artist (새로운 성난 사람들)>이라 이름 붙여졌다. 이는 이전의 급진성과 개혁성을 상실하고 기성의 미술계와 미술 시장으로 편입되어버린 추상표현주의를 비판하는 동시에 추상표현주의로 대표되었던 미국 모더니즘이 그 끝에 다다랐고 새로운 세대의 미술이 이스트빌리지를 중심으로 등장했음을 상징적으로 선언한 것이었다.
Hannah, Duncan(American, b.1952)
던컨 한나(1952-)는 미네소타 미니애폴리스에서 태어났다. 보수적이었던 가정환경에 반발하여 어릴 때부터 알코올과 각종 약물을 탐닉했으며, 이 시기의 반항적인 분위기를 대변했던 레드 재플린과 재니스 조플린의 록음악에 매료되기도 했다. 뉴욕으로 이주한 후 그는 파슨스 디자인학교를 다니면서 '노 웨이브 시네마'에서 활동하는 등 당시 뉴욕의 새롭고 다양한 문화를 만끽했다.
미국의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모두로부터 벗어나 있는 한나의 구상적이고 서사적인 회화는 종종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나는 예술의 역사를 하나의 것이 다른 것을 대체하는 것으로 보지 않는다."라는 작가의 말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그는 진보적이고 급진적인 것 같지만 실은 또 다른 통일성에 갇혀 있는 최신 유행을 따르지 않았다. 오히려 구상 회화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드는 방식을 택했다. 향수 어린 분위기를 띄고 있는 그의 작품들은 당시 뉴욕의 경향에 대한 반대항으로 읽히기도 한다. 뉴욕은 자신의 역사를 스스로 갱신하면서 더 빛나고 더 비싼 것들로 끊임없이 발전하는 도시였다. 이렇게 바르게 성장하고 변화하는 도시에 피로감을 느낀 한나는 정적이고 시간이 멈춘 듯한 배경 속에 누워있는 여성, 경기를 위해 준비 중인 자동차 등의 소재를 택하여 작품을 그렸다. 그는 뉴욕의 급진적이고 진보적인 예술에 동참하면서도 그로부터 거리를 두는 양가적인 태도를 보였다.
Lack, Stephen(Canadian, b.1946)
스티븐 랙(1946-)은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미술과 관련된 활동에 관심을 가진 랙은 맥길 대학교에서 미술 관련 심리학 학위를, 과나후아토 대학교에서 순수미술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드로잉에서부터 조각에 이르는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제작했으며, 신표현주의 경향의 회화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작가 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영화배우로 활동하기도 했다. 대학교에서 만난 프랭크 비탈레의 눈에 든 스티븐은 1974년에 그가 감독한 영화 <몬트리올 매인>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배우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여러 편의 영화에 출연하면서 돈을 모은 랙은 1980년대 초에 이스트빌리지로 이주했다. 그는 장-미셸 바스키아와 그의 여자친구 수잔 멀록의 집에 세를 들어 살았는데, 지저분한 방을 청소하는 대가로 바스키아의 그림을 받기도 했다. 이스트빌리지에서 본격적인 회화 작업을 시작한 구상회화에 영향을 받으며 당시 미국 중산층의 일상에는 드러나지 않지만 잠재해 있는 불안과 폭력성을 탐구한다. 또한 랙은 이스트빌리지 작가들과 함께 레이건 정부의 보수적인 정책과 신자유주의적 경제 질서 확립에 발맞추어 진행된 예술의 상업화와 보수화에 저항했다. <On the Ropes>(1984)와 <Master Detective>(1983)는 당시의 보수적인 분위기와 그에서 비롯되는 불안감,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저항 의식을 담고 있다. <On the Ropes>(1984)는 싸움에서 실컷 두들겨 맞은 후 로프에 매달려 겨우 몸을 지지하고 있는 사람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모습을 표현한 미니멀하고 과감한 붓자국 처리는 패배에 굴하지 않는 영웅적 모습을 제시한다. 밧줄에 묶여있는 여성이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모습을 그린 <Master Detective>(1983)는 강렬한 색과 과감한 묘사를 통해 지금껏 간과되고 억압된 여성의 주체성과 저항정신을 표현한다.
Romberger, James(American, b.1958)
제임스 롬버거(1958-)는 뉴욕 포트제퍼슨에서 태어나, 뉴욕 시각예술학교에서 공부했다. 1980년대 뉴욕 예술계의 선두주자 중 한 사람인 롬버거는 어두운 분위기의 작품으로 유명하다. 롬버거는 아내 마거리트 반 쿡과 함께 1984년에 이스트빌리지에 그라운드제로 갤러리를 열었으며, 당시에 매우 선구적으로 복합매체의 설치작품 전시를 기획했다. 여기서 전시한 작가 중 하나가 데이비드 워나로비치로, 그의 대표적인 작품 <내 뱃속의 불>(1987)이 이곳에서 상영되었다. 워나로비치의 자극적인 작품은 뉴욕 시대의 어두운 면을 보여주는 한편 에이즈 액티비즘의 고조되는 물결을 드러내는 데 도움을 주었다. 롬버거는 반 쿡과 함께 워나로비치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만화책 '초당 7마일'을 제작했다. 롬버거가 그림을 그리고 편집했고, 반 쿡은 색칠을 담당했다. 이 책은 워나로비치가 에이즈로 사망하고 4년이 지난 1996년에 DC코믹스의 자회사 '버티고'에서 출판되었으며, 최근에 롬버거와 반 쿡의 출판사 '판타그라픽스'에서 재발행되었다. 롬버거는 만화 '포스트 요크'(2012)로 2013년 아이즈너상 최우수 단편만화상 후보에 올랐으며, 2014년에는 반 쿡과 함께 회고록 형식의 '죽은 아이와 다른 동물들'을 출간했다. 그는 현재 '퍼블리셔스 위클리', '더 비트' 등의 매체에서 필자로 활동하고 있다.
Prol, Rick(American, b.1958)
릭 프롤(1958-)은 뉴욕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뉴욕 음악미술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후 조프리 발레학교의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1년간 수학했다. 1976년부터 1980년까지 프롤은 뉴욕 스튜디오스쿨에서 작업했고, 현재까지 뉴욕에서 살고 있다. 이스트빌리지가 가장 번성한 1980년대에 그곳에서 활동한 프롤은 이스트빌리지의 실험적인 예술 공동체에서 다양한 아이디어를 수용했다. 릭 프롤은 장-미셸 바스키아의 오랜 친구이자 그의 마지막 어시스턴트였다. 그들은 1982년에 펀 갤러리에서 처음 만났고, 1987년에 갤러리스트 브레지 바쿠미언의 제안에 따라 프롤이 바스키아의 스튜디오 어시스턴트가 된다. 바스키아가 프롤을 작가로서 존중하고, 신뢰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프롤은 바스키아와 서로 영감을 주고받으며 바스키아의 죽음 전까지 그의 전시 준비를 도왔다. 프롤은 1980년대를 풍미한 펑크의 감성을 탁월하게 작품에 녹여낸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의 작품은 뉴욕이라는 도시가 가진 위험하고 어두운 현실을 유머러스하게 담아낸다. <뉴욕의 명복을 빈다>(1988), <흡연(출입금지)>(1983), <녹색 병>(1982)에 등장하는 충격적이고 대담한 색상으로 흔들거리는 인물, 자해하는 인물, 깨진 병과 같은 이미지는 뉴욕의 어두운 면을 상기시킨다. 프롤이 작품은 '뉴요커'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곤란하고 충격적일 수 있지만, 이는 항상 '편하게 볼 수 있는' 대중적인 작품이 줄 수 없는 통찰을 제공한다. 그는 작품을 통해 '항상 좋은 것은 아니지만 삶에 진실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다.
Radakovich, Jim (American, b. 1954)
짐 라다코비치(1954-)는 일리노이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여동생은 칼럼니스트 안카 라다코비치다. 그는 오하이오에서 자랐고 매릴랜드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이후 매릴랜드 예술대학에 다녔는데, 그의 반에는 도널드 배클러, 제프 쿤스, 에런 핑크, 데이비드 험프리 등이 있었다. 졸업 후에는 뉴욕으로 이주했다. 라다코비치의 작품에는 차용, 신표현주의, 신초현실주의가 결합되어 있다. 그는 모딜리아니를 차용하여 얼굴이 긴 인물을 그린다. 이때 그의 회화는 초현실주의적인 분위기를 형성하지만, 강렬한 색채로 표현된 인물들은 표현주의적 기법으로 그려졌다. 원시적인 모티프를 가져와서 현대 도시의 정서를 표현하는 그의 회화는 유머러스하면서도 진지하다. 라다코비치는 1982년부터 이스트빌리지의 여러 단체전에 참여했고, 1983년에 첫 개인전을 개최했다. 1984년에 센서리에볼루션 갤러리에서 개최한 개인전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다. 그는 1980년대 내내 이스트빌리지에서 활발하게 활동했으며, 릭 프롤, 마틴 웡, 키키 스미스 등과 함께 티모시 그린필드-샌더스의 <새로운 성난 사람들>(1985)에 출연했다. 그는 현재까지도 작품 활동을 지속하고 있으며, 2015년에는 매니캔터센터에서 개최한 로어이스트사이드 지역 예술가에 관한 전시 <모두 / 함께 / 다른>에 릭 프롤, 키미 스미스, 제임스 롬버거 등과 함께 참여했다.
Crash (American, b.1961)
크래시는 뉴욕의 지하철, 자동차 및 낡은 건물의 벽화를 통해 처음 발탁되었으며 현재는
거리 그래피티 아티스트의 선구자이다. 그의 작품은 "거리의 삶과 확립된 사회 간에 시각적인 연결 고리"를 전달한다.
Crash는 뉴욕 브랑스(Bronx)에서 자랐다. 그는 13세의 나이에 동네에서 기찻길을 돌아다니는 십대 청소년들을 따라다니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두각을 일으켰다. 그가 실수로 학교에서
컴퓨터를 추락시킨 후 "CRASH"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고, 그 이후 그의 이름은 뉴욕시
전체에 걸쳐 순환하는 기차에서 볼 수 있었다. 그는 1980년까지 기찻길에서 의 활동을
스튜디오 작업으로 전환하기 시작했으며, Fashion MODA에서 "Graffiti Art Success for America"라는 상징적인 전시회를 기획하여 오늘날까지도 매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그래피티
예술가이다.
CRASH는 낙서와 거리 예술에 중점을 둔 전 세계 수많은 박물관 및 갤러리쇼의 일부였으며,
많은 영구 박물관 컬렉션에서 작품을 보유하고 있다. 그는 시각적으로 상징적인 Absolut Vodka, Fender Guitars, SoBella Handbags, Levi's,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Tumi 수하물 및 Morphik과 같은 프로젝트를 위해 많은 회사와 파트너 관계를 맺어 활동하였으며, 현재에도 활발한 활동 중이며 미국 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 전시를 하고 있다.
Daze(Chris Daze Ellis) (American, b.1962)
데이즈(Chris Daze Ellis)는 미술과 디자인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70년대 중반 뉴욕의 지하철에 다작의 작업을 하며 경력을 쌓았다. 그는 그 당시 지하철 거리활동에서 스튜디오
작업으로 전환하여 성공을 이룬 몇 안 되는 예술가 중 한명이였다.
그의 첫 번째 그룹쇼는 1981년 뉴욕의 Mudd club에서 열린 "Beyond Words"쇼였다. Jean Michel Basquiat와 Keith Haring과 같은 아티스트와 함께 전시되었으며, 이 전시에서 Basquiat와 즉흥적으로 협업한 첫 작품을 판매하였다. 그의 작품은 국제적으로 수많은 그룹쇼 및 박물관 리서치에 참여하였으며 이러한 박물관 및 갤러리 전시와 함께 Daze는 수년 동안 많은 공공 미술 프로젝트에도 참여하였다. 홍콩의 Star 페리 터미널 벽화 완성, Hofstra 대학 강의 및 Bronx 박물관 강의, 하노버에서의 전체기차역 디자인, Lee Quinones와 Crash와 함께하는 독일의 청소년 워크샵, 리우데 자네이루의 후투즈 축제, 싱가포르의 비보 시티쇼핑센터의 벽화 작업과 같은 프로젝트들이었다.
Daze의 그림은 Madonna와 Eric Clapton의 개인 소장품에서 발견되기도 하였으며, 그의 작품은 뉴욕 근대미술관, 브루클린 박물관, 뉴욕시 박물관, 네덜란드의 그로 닝거 박물관 및 독일 아헨의 루드비히 박물관과 같은 박물관의 영구 컬렉션에 소장되어 있다.
Futura (American, b.1955)
최근까지 Futura 2000으로 활동했던 Futura는 미국의 그래피티 아티스트이자, 디자인
그래픽 디자이너 그리고 일러스트레이터이다. 70년대 초반 뉴욕 지하철에 불법으로 낙서를 하기 시작하여 80년대는 키스해링, 바스키아, 리처드 햄블턴 그리고 케니샤프와 전시를 선보이기도 했다.
80년대 모든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이 레터링을 이용하여 글씨를 썼다면, Futura는 에어브러시와 같은 보다 섬세한 라인을 그리며 Abstract Street Art의 선구자가 되었다. 90년대에는 Nike, Supreme, Undercover, Levi's, A Bathing Ape, The North Face, Medicom Toy와 같은 수많은 브랜드와 콜라보 협업을 통하여 대중들에게 더 알려졌다.
Quinones, Lee (Puerto Rican, b.1960)
리 퀴노네스는 1970 년대와 1980 년대 뉴욕 지하철 벽면에 그린 그래피티로 유명한 미국
푸에르토 리코의 예술가다. 지하철 한 칸의 벽 전면에 그래피티 작업을 하기 시작하여, 1976년에는 지하철 10량의 전체를 그래피티로 채워 그려서 유명해졌으며, 그 지하철 칸의 수는 총 125량이었다. 특히 여타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은 리 퀴노네스의 작품을 존경하여 그의 그림 위에는 누구도 손을 대지 않았다. 리 퀴노네스는 "Earth is Hell, Heaven is Life"("지구는 지옥, 천국은 생명이다")와 "The Bomb"과 같은 인용문을 사용하여, 낙서를 통해 정치 및 문화적 문제를 다루었다. 리 퀴노네스는 기차에서 벽화를 만들지 않고 캔버스 기반의 그림을 만들기 시작한 최초의 거리 예술가 중 한 사람이다.
1974 년 지하철 전동차에 그래피티 작업을 시작했던 그는 1976 년 장 미셸 바스키아(Jean-Michel Basquiat)와 키스 해링(Keith Haring)이 참여한 커뮤니티에서 이미 유명해졌다. 지하철 낙서 예술가로서 그는 125 대의 전동차를 한데 모아 독점적으로 전 차량을
페인트하였다.
오늘날 그의 작품은 뉴욕의 휘트니 미술관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과 네덜란드의 그로 닝거 박물관 (Groninger Museum)에서 수집되어 있다. 최근의 2007년에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전설의 영국 뮤지션 에릭 클랩튼(Eric Clapton)이 12만 달러에 달하는 리 퀴노네스의 작품 12점을 구입하여 스타 작가로서 다시 한 번 전성기를 맞이했다.
Ahearn, Charlie (American, b.1951)
찰리 에이헌은 미국의 영화감독이다. 대표작으로는 80년대 당시의 그래피티(Graffiti)와 힙합(Hip Hop)을 보여주는 최초의 힙합 영화이자 다큐멘터리 영화 <와일드 스타일(Wild styles, 1983)>이 있으며, 헨리 찰펀트(Henry Chalfant)의 영화 <스타일 워즈(Style Wars, 1983)>의 맥락이 연결되어 유명해졌다. 이 영화의 주역 "Zoro"는 뉴욕 그래피티 아티스트 리 퀴노네스("Lee" George Quiñones)가 출연한다.
그는 최근 PPOW(P.P.O.W. Gallery, New York)에서 슬라이드 쇼, 비디오, 사진, 실크 스크린 그림으로 Scratch Ecstasy Exibition을 출품했다
Beckman, Janette (British, b.1959)
자넷 벡맨은 영국 출신의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로, 현재는 뉴욕에 거주하며 영국 스타일의 잡지 'Jocks & Nerds'의 뉴욕 편집장이다. 그녀는 The Face and Melody Maker에서 일을 시작했고, Clash에서 Boy George까지의 밴드와 3 개의 경찰 앨범 커버를 촬영했다. 1982 년 뉴욕으로 이주하면서 그녀는 지하 힙합 씬에 매료 되었다.
최근의 자넷 벡맨의 사진은 뉴욕시 박물관, HVW8 LA, Le Salon Paris, 모리슨 호텔 갤러리 NYC, 폴 스미스 런던, 타워 레코드 도쿄, 블렌더 갤러리 시드니에서 전시되었다.
Cooper, Martha (American, b.1943)
마사 쿠퍼는 1940년대 메릴랜드 주 볼티모어에서 태어난 미국의 포토 저널리스트다. 1970년대 뉴욕 포스트의 사진가로 일했던 그녀는 70-80년대의 뉴욕시 담벼락에 그려진 그래피티 아트를 기록한 것으로 유명하다.
1984년, 그녀와 헨리 찰팬트(Henry Chalfant)는 그래피티의 바이블로 불리는 ‘지하철 아트(The Subway Art)’에 뉴욕시에서 기록한 그래피티 아트 사진을 게재했으며, 2009년까지 50만부를 판매했다. 여러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은 2013년 3월, 그녀의 70세 생일을 맞아 휴스턴 거리에서 그녀에 대한 경의를 표하기도 했다.
Maripol (French, b.1955)
마리폴은 프랑스 출신의 폴라로이드 포토그래퍼이자 아트 디렉터로, "80년대 클럽 문화의 문지기"로 묘사되었다. Jean-Michel Basquiat, Madonna, Keith Haring, Deborah Harry 및 Andy Warhol이 등장하는 여유롭고 세련된 폴라로이드 이미지는 뉴욕 예술 역사상 가장 활발한 전성기를 대표한다. 마리폴은 1976 년 스무 살에 뉴욕으로 처음 이주하고 1년 만에 그녀는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 Fiorucci에서 디자이너로 데뷔하며 예술 감독이 된다. 80년대 중반까지 뉴욕의 SoHo 지역에서 자신의 가게인 마리폴리탄(Maripolitan)과 함께 성공했다. 1977 년 최초의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었으며 스튜디오 54를 자주 촬영했다.
또한 마리폴은 1980 년대 중반 마돈나의 Like a Virgin 앨범에서 팝 가수 마돈나를 디자인하고 스타일링 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마리폴의 검은 색 고무 팔찌, 보석 및 십자가는 이 시기에 마돈나만큼 유명해졌다. 그녀는 또한 Like a Virgin 투어를 위한 공식 마돈나 보석 및 부속품의 선을 만들었다. 동시에 1980 년대 아티스트 Keith Haring의 "Crack is whack"과 같은 다큐멘터리 영화를 연출했다.
그녀는 또한 영화 제작자로 활동했으며, 특히 주연 아티스트 장 미셸 바스키아(Jean-Michel Basquiat)와 블론디(Blondie) 리드 싱어 인 Deborah Harry를 비롯하여 많은 New York No Wave 밴드의 뮤지컬 단편들로 구성된 Downtown 81의 포스트 프로덕션에서 활동했다. 그녀는 Cher, D' Angelo, Elton John 및 Luther Vandross의 뮤직 비디오 아트 디렉터이기도 하다.
Judy Glantzman (American, b.1956)
Judy Glantzman was born in New York and graduated from Rhode Island School of Design in 1978. She settled down in the East Village in the early 1980s and started her Career as an artist beginning from shows in Civilian Warefare Studio and Gracie Mansion Gallery. In 1985, Glantzman produced work modeled after sixty-six artists, critics, and Collectors of the East Village. 3D portraits drawn on the veneer made of cheap wood were exhibited at the Steven Adams Gallery. Through the portraits of the central figures of the time, One could make sense of the mood in which the artists worked together and how such network has Affected the artists’ works. Portraits of Tessa Hughes Freeland, a director of the East Village underground Film scene in the 1980s, Carlo McCormick, Hughes-Freeland husband and critic, as well as Hal Bromm who ran a gallery in the area since 1976 until now, are included in the series.
Later, Glantzman mainly produced self portraits. Obsessive and capricious self description shows fragmented images overlapping one another and laid out, putting her in comparison with the boldness and intensity of Francisco Goya, Edvard Munch, and Francis Bacon. As an paintings with colors and expressions full of energy. Her descriptions of the body show unrestrained expression and boldness that visualize the artist’s passionate spirits as well as a variety of emotions of love, anxiety, joy, and pain. As much, Glantzman’s paintings embody swerving emotions sincerely instead of delivering accurate information. For Glantzman, art is not a handicraft to be perfected through training but an embodiment of overflowing emotions.
In her journal from her own sensations and emotions to social relations, Glantzman decided to engage in more explicitly social issues after encountering Picasso’s Guernica. Glantzman’s interest expanded from pathos on individual’s imaginations to social affect produced in social and political events such as wars.
Richard Hambleton (Canadian, b.1952 – d.2017)
Richard Hambleton is a Canadian graffiti artist based on the United States and is called "The Godfather of Street Arts." With Keith Haring and Jean-Michel Basquiat, Hampton filled the streets of New York in the 1980s with graffiti.
He also became famous for his 'shadow man' work, and painted 'shadow man' on the walls of Venice and the Berlin Wall.
Hambleton, known as a hermit artist, worked until recently on the lower east side of New York City and died in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