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전시 Current Exhibition

형이하 악
박불똥
형이하 악
장소
관훈갤러리 1,2 층
날짜
2011.10.12 ~ 2011.10.25

고갱이나 고호가 살던 시대에 디카와 포토샵이 있었다면 그들은 어떤 작업을 펼쳤을까?

백남준이 마네와 동갑내기로 출생해 예술을 했다면 과연 그의 ‘사기’가 통했을까?

시대와 예술은 상호기여로써 세상을 진보시킨다. 

 

<형이하 악>, 그 ‘일말의 진실’

수년 동안 디지털카메라에 시나브로 담아온 일상생활 도처의 장면들을 컴퓨터로 가공하여 ‘색다른’ 이미지를 만드는 일은, 이번 작업의 소박한 과정이되 삶의 현장에 생생히 밀착된 ‘창작’의 즐거움이었다.

‘디카’에 담을 수 있는 건 내 가시(可視)와 반경(半徑) 범위 안쪽의 것들이기 마련인데, 가까운 대상부터 포착해 먼저 가족과 지인(知人)들을 찍었다.

그리고 아주 작은 것, 마당에 기어 다니는 이름 모를 벌레나 작업실 안팎에 공생하는 곤충 등 미물들을 찍었다.

근린에서 철따라 피고 지는 형형색색의 화초뿐 아니라 식사 후 남은 음식찌꺼기, 길을 걷다 주운 자질구레한 쓰레기 따위도 찍었다.

경기도 마석과 서울 인사동간 또는 가곡리 와 금남리, 입석리간 자주 오가는 동선(動線) 위의 시간과 공간을 찍었다.

작업실 지근(至近)에 모란공원이 있어 민주열사묘역에서 ‘용산참사’ 희생자들의 산역(山役)광경도 마침 찍었다.

이소선 여사 삼우제(三虞祭) 날, 아직 비닐우비에 덮여 있는 묘소를 찍고, 방금 막 떠나간 유족들의 발길 뒤 켠 풀숲에 버려진 면장갑 한 짝도 찍었다.

아울러 생년(生年)이 내 또래인 노동자시인(詩人) 조영관과 ‘당시 22세’의 박종철 열사 묘비를 찍었다.

촛불정국 때 광화문에 나가 ‘명박산성’을 찍었고 2009년 5월 29일엔 봉화마을의 오전과 수원연화장의 오후를 찍었다.

더 여러해 전에는 30여년 만에 찾아간 고향마을의 비좁고 남루한 골목풍경들을 찍었었다.

인물이든 정물이든 풍경이든 그것들은 하나같이 ‘그림’과 ‘사진’의 접경지에서 내 나름대로 경작해낸 ‘일말의 진실’이다.

‘민중’은 철지난 유행어가 된지 이미 오래고, ‘그림은 그림일 뿐’이라는 각성이 무성해진 현실을 생각하면 나는 이번 작업에서 ‘외람되지만’ 스스로 위로와 격려를 얻는다.

<형이하 악>에는 최소한, ‘구름잡는소리’는 없으므로. 

 

 

정물_35x22cm_C Print_2011


 

Butfly1_35x25cm_C Print_2011



 

 

 


헤테로자이거스_24x26cm_C Print_201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