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영 훈
점점 빛으로
“애초에 법이 없으며 주체인 내가 한번 그음으로써 모든 법이 생겨난다.” 명말청초의 천재 화가 스타오는 자신의 화론(石濤畵論)을 이렇게 시작한다. 그래서 일획이 만획이 된다.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이나 존 케이지(John Cage)와 머서 커밍햄(Merce Cunningham)이 주장하는 “개념”, “소음”과 “일상의 몸짓”이 미술이고 음악이며 무용이라는 소리도 같은 맥락이다. 절대적 개인으로 아티스트가 자기 예술의 최소 단위로 환원해서 그라운드 제로에서 자신의 세계를 작품으로 재구성하여 출발한다는 것이다. 박영훈의 회화 작업도, 같은 맥락에서, 한 점의 점에서 시작하고 끝난다.
미술사에서 점을 하나의 최소 추상 단위로 환원하여 그 점으로 구성하는 작업은 흔한 일이다. 조르주 쇠라(Georges Seurat)부터 폴 시냑(Paul Signac), 로이 리히텐스타인(Roy Lichtenstein),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 등에 이르기까지 적지않은 예술가들은 점들로 발생하는 색채의 효과가 주는 시각적 즐거움을 우리에게 부여하였다. 또 디지탈 매체가 발달하면서 망점이나 픽셀이라는 디지탈 이미지의 최소 단위로 사용해서 작업하는 일도 흔해졌다. 박영훈도 그 흐름 속에서 작품을 진행했지만, 박영훈의 점은 최소 단위로 환원된 “영점추상(Abstraction Degree Zero)”이 아니라, 점 자체가 형태를 가진 꽉 찬 작은 덩어리, 물질이다. 캔버스 위에서 재현되는 점은 점이면서 면이고, 형태며 색인 모든 것의 재현이 된다.
동시에 점은 재현이면서도 픽셀이나 망점처럼 그 자체 외에는 아무 것도 의미하지도 지시하지도 않는다. 캔버스 표면 위에 하나 하나 그 점들을 붙이는 행위를 통해서 점들은 마치 전통적 페인팅에서 붓질(brushstroke)같은 효과를 드러낼 뿐만 아니라, 예술을 통한 본인의 수행적 의지와 태도라는 비물질적인 아이디어를 구현하려는 노력의 결실이다. 그 결과 박영훈의 점은 그것을 통해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계를 보는 아티스트의 눈과 그 세계를 붙잡으려는 의지처럼 보인다.
박영훈은 얇은 반무광 칼라알루미늄을 6가지 사이즈, 5가지의 형태의 작은 덩어리로 기계를 사용하여 잘라서 의료용 핀셋으로 캔버스 위에 옮겨 붙인다.그리고 무광 투명 우레탄으로 도장까지 하면서 어마무시하게 시간과 노동을 잡아먹는 한 점의 작품을 완성한다. 얼핏보면 반도체 회로판이나 배전판처럼 기계로 찍은 듯이 보이는 회화작품이 사실은 10,000개가 넘는 작은 덩어리로 이루어진 미니어처에 가까운 조각설치 작품에 가깝다. 항공에서 내려다 본 도시의 모습이나, 디오라마, 또는 건축 개발 모형도처럼 보이는 것이다.
가까운 거리에서 작품을 보면 그 점들을 입체적으로 조감할 수 있고, 그 점들이 만들어 내는 입체적 질서를 지각할 수 있지만, 작품에서 멀어지면서 거리가 생길 수록 그 입체적 캔버스가 평면적인 색의 향연처럼 보이다가 급기야는 색이 만들어 내는 빛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거리에 따라서 관객들은 작은 입자들이 구성되고 배치되는 시각적 자극에서 점차 형태가 사라지며 색으로, 마침내 급기야 빛으로 보여 형태가 사라지는 놀라움을 체험할 수 있게 된다. 색으로 빛으로 인지되는 체험 속에서 그 형태 자체가 의미나 개념으로 전환되어 가는 것이다. 그에 따라서 관객들은 물질에 포박된 물질성에서 벗어나는 자유라는 감각을 만끽할 수 있는 여정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 박영훈 작품이 부리는 마술적 효과 때문에 갤러리라는 건축적 공간은 색 속에서 물질이 사라지는 감각적 공간으로 탈바꿈 한다.
마치 라이프니츠의 세계의 완결된 최소 단위인 모나드가 모여서 조화롭게 구성되는 거대한 세계처럼 박영훈의 회화는 그 자체가 원인이 되는 완전체인 하나하나의 점들이 모든 원인의 바깥에 존재하는 아티스트의 손을 통해서 “운명”으로 작품이 우리에게 제시된다. 자체 완결적인 점들이 자체 완결된 예술가의 지각과 욕구로 수렴되면서 또 다른 완전한 세계가 작품으로 창조된다는 것이다. 마치 한 없이 쪼개져 더 이상 쪼개질 수 없는 최소 단위를 만들어서, 그것들을 다시 쌓아가는 이 예술적 작업의 과정은 수학의 세계처럼 엄밀하고 정직하다. 달리 미분이고 적분이겠는가. 스스로 완성되고 완결된 박영훈의 고독하고 고상한 낭만적 내면이, 그 누구에게도 열어보이지 않던 자기만의 세계가 매우 도발적으로 수줍게 드러나고 있다
박영훈은 이미 만들어진 규칙과 조건들 안에서 자신만의 규칙을 만들거나 새로운 언어를 발견하여 조형적으로 드러낸다. 작가는 자아와 타자, 주체와 사물, 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이미지와 정보, 언어와 비언어 등 대립의 극단을 작품 속에서 새롭게 부여한 조형적 질서로 다시 구축하여 표현한다. 빛, 소리, 공기, 파장처럼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요소들을 상상하고 시각화하는 것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미디어, 입체 등 다양한 매체의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주요 전시
2024, ⟪Singing from the Dark Times⟫, 베니스비엔날레, 베니스
2023, ⟪BLACK INTO LIGHT 4⟫, AAW 갤러리, 부산
2023, ⟪BLACK INTO LIGHT⟫, 아트필드 갤러리, 서울
2023, ⟪BLACK INTO LIGHT⟫ , 엠엠아트센터, 평택
2022, ⟪BLACK INTO LIGHT⟫, 갤러리한스, 부산
2022, ⟪BLACK INTO LIGHT⟫, 갤러리 분도, 대구
2022, ⟪Common Minimalism⟫, 팔레드서울, 서울
2021, ⟪BLACK INTO LIGHT⟫, 프린트베이커리 잠실롯데월드타워점 , 서울
2020, ⟪Happiness⟫, RXART, 뉴욕
2019, ⟪Journey into the Line⟫, 청주비엔날레, 청주
2018, ⟪Journey into the Line⟫, 관훈갤러리, 서울
2011, ⟪Bad Cloud, Gook Cloud⟫, Maum, 뉴욕
2003, ⟪Visual Semantics⟫, Valparaiso Mojacar, 알메리아, 스페인
이 건 희
촉촉 가시적 촉각
마샬 맥루한Herbert Marshall McLuhan은 “미디어는 마사지”라고 주장했다. 시각적 감각이 지배하던 세상에 전자 미디어가 등장하면서 모든 감각이 촉각적으로 전환된다는 것이다. 물론 그가 말하는 촉각은 피부에 느껴지는 감각이 아니라 여러 감각이 상호작용 하면서 발생하는 감각의 마주침이다. 우리가 어떤 대상과 접촉할 때 여러 감각을 동원하여 느낀다는 것이다. 그래서 감각의 비율이나 배분이 촉각성의 진면목이 된다.
현대 미술에서 촉각성은 이미 본질적인 부분이다. 시각적이어야 한다는 미술의 본질은 냄새나 소리, 피부 감각을 주요한 소재로 삼아서 시각을 확장해 왔다. 이건희는 재료를 일관되게 촉각적으로 사용하여 작품을 제작해 왔고, 닥나무로 만든 한지와 이를 구성하고 있는 물성을 오감을 통해 시각화한다. 특히 그 과정에서 나물을 무치듯 펄프를 손으로 조물조물하며 형태를 잡아 작업하는 방식이 인상적이다. 그의 작품은 평면적이기보다 매우 입체적이고 과정적이다. 고정적이기보다 가변적이며, 완결되기보다 열려 있다. 캔버스에 올린 평면 작업조차 사실 부조에 가깝다. 시각 중심일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와 동시에 피부 감각과 후각적인 연상이 작품 속에 담겨 있다.
이건희는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문자와 이미지의 상관관계’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개인전 30여 회와 단체전 300여 회를 여는 등 활발한 활동을 지속해오고 있다. 작가는 작업 과정에서 얻어지는 종이의 크기와 두께를 자유자재로 연출할 수 있고, 재료가 가지는 장점을 이용해 한지의 물성이 그대로 드러날 수 있게 만드는 조형적인 작업을 한다.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및 부산시립미술관에 소장되어 있고, 아트상품 개발도 활발하게 진행하며 과천국립현대미술관 아트존에 입점되었다. 작가는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대중과 연결될 수 있는 역할로서 예술을 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고민하며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주요 개인전
2023, ⟪당신은 세상이 꽃을 피우는 가장 최신의 방식이므로⟫, 금샘미술관, 부산
2022, ⟪종이산책⟫, 갤러리 한스, 부산
2021, ⟪소곤소곤 말하는 종이⟫, 소울아트스페이스, 부산
2018, ⟪paper on paper⟫, 팔레드 서울, 서울
2017, ⟪채집된 이미지⟫, 아리오소갤러리, 울산
2016, ⟪종이로 그리다⟫, 이듬갤러리, 부산
2016, ⟪종이로 그리다⟫, 한국아트미술관, 부산
2015, ⟪연몽:유연한 꿈⟫, 퍼스트 아이콘, 부산
2014, ⟪언어의 숲⟫, 오션어스아트홀, 부산
2013, ⟪문자조형⟫, 용두산갤러리, 부산
2012, ⟪종이위에 써내려간 그림⟫, 팔레드서울, 서울
2011, ⟪즉자언어⟫, 수가화랑, 부산
2009, ⟪종이의 변형⟫, 프라자갤러리, 일본 동경
2008, ⟪종이와 기호⟫, 인사아트센터, 서울
2007, ⟪소통, 문자를 보내다⟫ / 부산롯데화랑 / 부산
2006, ⟪Language of Distance⟫, 부산시청 3전시실, 부산
주요 단체전
2024, ⟪Sensescape⟫, PS CENTER, 서울
2024, ⟪초월의 시간⟫,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 광주
2024, ⟪From where to where 어디에서 어디로⟫, 헬로우 뮤지엄, 서울
2023, ⟪The Present⟫, 아트핀 갤러리, 서울
2023, ⟪사이⟫ 김선영x이건희, 아트핀 갤러리 / 서울
2023, ⟪긴밀한 수행⟫, 영담한지미술관, 청도
2023, ⟪너의 시간⟫, 무등현대미술관, 광주
2022, ⟪구름에 달 가듯이⟫ 영담한지미술관 기획전, 청도
2022, ⟪이 작가를 주목한다⟫ 부산대학교 아트센터 기획전, 부산
2022, ⟪Hanji-paper⟫, 주영한국문화원, 영국 런던
2021, ⟪물성과 사유전⟫, 부산대학교 아트센터, 부산
2020, ⟪달성 대구현대미술제⟫, 달성 디아크, 대구
2020, ⟪경계에 서다⟫, 구룡포 예술공장, 포항
2019, ⟪오래된 시간과 새로운 공간⟫, 은암미술관, 광주
2018, ⟪기억의 정원⟫, 원주한지테마파크, 원주
2016, ⟪오사카한지문화제⟫, 오사카국제교류센터, 오사카
2015, ⟪한지의 정서와 현대미술⟫, 뮤지엄SAN, 원주
2015, ⟪창원 아시아 미술제⟫, 성산아트홀, 창원
2015, ⟪한국현대미술초대전⟫, 울산문화예술회관, 울산
작품 소장처
부산시립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부산시립의료원, 부산남구청사, 부산영도구청사, (주)효성 외 다수
김 수 철
지지 遲遲 느리게 느리게
내가 하고 싶은 것과 함께 살아낸다. 나의 뇌는 일상에서 만드는 다양한 안료들과 재료들을 물리적 자아의 표상으로 흡수한다. 신경학적 의미에서 그것들은 내 영역(정신, 몸)의 일부가 될 것들이다. 그것은 나와의 상호작용이 예술적 관점에서 생성 될 미적 감각, 감수성 맥락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이라도 수시로 재해석하고, 재인식하려 하며 아주 적극적으로 의미 부여를 한다. 소소한 일상의 개인의 서사가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오만함을 지닌 것은 아니나 현재 예술과 조우하는 매혹적인 접근 방식에서 이것은 나에게 매우 적절할 뿐이다.
나에게 새로운 미감과 새로운 예술의 존재방식에 대한 선택과 집중, 모색은 중요한 욕망이며 과정이다. 지금은 거리낌 없이 자연스럽게 사물들을 이해하고 마음과 몸은 사물을 조종하고 작동시킨다.
지금의 작업들은 나의 예술 영역에서 그들과 함께 깨어있는 시간대와 작품제작 과정에서 드러난 결과다. 표현은 많은 호기심의 궤적과 심층의 결과물들의 누적이다. 이기적이지만 그렇게 나의 예술의 생산적 가치와 존재이유를 창조한다. 온갖 예술과 그에 따른 작업들이 쏟아지고, 새로운 관점과 그 기술이 예술의 존재방식을 증명한다.
내가 예술의 존재이유와 가치를 벗어나는 것에 무슨 망설임을 가질까?
김수철 작가 작가노트 中
김수철은 회화, 입체, 설치 등 다양한 작업의 방법론을 통해 예술의 존재 방식에 대한 의문과 새로운 감각과 감수성을 찾는 작업을 한다. 작가만의 시선으로 색, 선, 면, 조형, 재료, 공간들을 재인식하고 표현한다. 이러한 방식에는 이성과 논리보단 서정적인 관계-감응(관찰, 만남, 채집, 재미) 안에서 예술이 구축되길 희망하는 작가적 태도가 담겨 있다.
주요 개인전
2022, ⟪PLASTIC CATHARSIS》, 엠엠아트센터, 평택
2017, ⟪육화정신-환상방황, 예술정치-무경계프로젝트》, 실험공간 UZ, 수원
2014, ⟪GNOSIS》, 오산시립미술관, 오산
2014, ⟪현의 미학》, 리더스 수갤러리, 서울
2010, ⟪GNOSIS》, 스페이스 함, 서울
2009, ⟪GNOSIS》, 숲 갤러리, 서울
2006, ⟪GNOSIS-天蓮華》, 대안공간 눈, 수원
2004, ⟪GNOSIS-‘현대미술하고 놀자’》, 대안공간 소나무갤러리, 안성
최근 단체전
2024, 《FREEDOM PROJET》, 유제프 체코비츠박물관, 폴란드
2023, 《Black Archaeology》 , 을지예술센터, 을지트윈빌딩로비, 서울
2023, 《도시풍경 도시산책자》, 복사골갤러리, 부천. 부평문화센터, 부평. 111CM, 수원/ LES601선유, 영등포. 의정부문화역이음, 의정부
2023, 《아트한 개관전, 환대의 식탁-마주하다》, Gallery Art Han, 수원
2023, 《FREEDOM PROJET-국제미술제》, Book Art Museum, 폴란드
2023, 《Shelter - 도시 영등포》, LES601선유, 서울
2023, 《The Present》, ARTFIN 갤러리, 서울
2023, 《긴밀한 수행》, 영담한지미술관, 청도
2022, 《행궁유람 행행행》, 수원시립미술관, 수원
2021, 《경기미술 컬렉션 특별전》, 경기천년길 갤러리, 의정부
2020, 《DMZ WINDOW PROJECT》, Avalanche Art Space, 미국
2017, 《예술정치–무경계 프로젝트 - 1,2,3차》, 실험공간 UZ, 수원
2013, 《검은성자와 하얀악마》, 쿤스트독갤러리, 서울
작품소장
경기도미술관(안산, 대한민국). 수원시립미술관(수원, 대한민국). 오산시립미술관(오산, 대한민국)
Book Art Museum(Poland)